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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 서명이란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그 자체로 불특정의 사람들을 병렬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병렬화의 방향이 문제가 된다. 좋다/나쁘다의 기준은 애매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좋은 쪽으로 병렬화되기도 한다. 반대로 나쁜 방향으로의 병렬화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것을 서명의 '병렬화'라고 부르겠다(단어가 따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임의로 붙이는 단어다)

 

왠지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 같은데 다음 아고라 이후의 각종 온라인 서명은 사람들을 점점 하향병렬화시키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종량제 반대서명. 그리고 노컷아이두도 현재 그렇게 될까 말까의 갈림길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하향병렬화때문에 일어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것을 하기만 하면 무조건 고쳐지거나 바뀐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파고든다는 것이다. 1000만명만 모으면 KT가 종량제를 포기한다거나 100만명만 모으면 학교에서 두발제한이 사라진다거나 한다고 홍보문구가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게 정확히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심각성이 있다. 그럼 일본인 3000만명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서명하면 독도가 한국땅에서 일본땅이 되기라도 하냐? 아니란 말이지. 현재 노컷아이두쪽에 보이는 시위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위를 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되면 다행이지만 안 되면 그 사람들은 누구 탓을 할 것인가?

 

또한 서명의 하향평준화가 진행되면 서명의 취지가 잘못 전달된다는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나는 현재 종량제의 반대가 '모든 종량제'의 반대가 되어야 하는지 'KT의 종량제'가 반대가 되어야 하는지 아직도 파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속시원히 '정확히 우리는 이것에 대해 반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찾지 못했다. 노컷쪽도 마찬가지. 지금 진행하는 두발제한폐지운동은 '두발에 관한 모든 사항의 자유화'가 아니다. '인권탄압적인 강제규정의 폐지'이면서 더 나아가서는 '학생회가 자체적으로 관련 조항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하면 두발제한도 꽤나 스케일이 작은 운동일 것이다. 내가 있던 아무개 고등학교에서 몇년 전 노컷운동 때문에 학생회를 소집했는데 중간에 교장이 난입해서 조항 수정에 실패했단 이야기는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다.

(여담이지만 웃긴 건 3000원?에 그럭저럭의 퀄리티로 내가 다니던 학교의 머리를 깍아주던 교내이발소를 갑자기 철거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법률위반 어쩌구라고 하던데 그럼 새로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두발자(자유가 아니다. 자율이다)화운동에는 지금 말한 하향평준화의 조짐이 이미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팸문자 사건을 봐도 알 수가 있다. 자기 딴에는 이 운동에 도움이 되려고 한 짓거리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서버증설로 진짜 100만명 해보자-가 되었으니 상관없지만 그 전에 그런 스팸문자때문에 아이두라는 사이트가 일개 싸구려사이트로 전락해버렸으니 얻은 것보단 잃은 것이 많은 판국이다. 또한 문자 내용에서 '무조건 된다'고 써붙여놨는데 그게 무지막지하게 퍼졌단다. 결과가 참 좋기도 하구나. 그게 실패하면 '어어? 무조건 된다며?'라는 그런 하향병렬화된 생각때문에 다시는 노컷운동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쪼까 억측인 면이 있긴 있다). SAC에서도 그러지 않는가. 병렬화된 사람들일수록 그에 대한 불안정성도 증가한다고.

 

그렇기 때문에라도 노컷아이두는 정확히 어떤걸 폐지시켜야 하고 어떤 것을 이루어야 하는지 그 목적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찔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이미 메인페이지에서도 그런 점을 알려주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지막지하게 많다는 사람들 고려해봐야 한다). 특히 서명페이지를 눌러서 그냥 쓰기만 하는 그런 초단순한 홍보방식이 많기 때문에 적기전에 한 장의 페이지를 추가로 만들어 정확히 이런 것에 대한 서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힐 필요가 있다. 이것은 비단 노컷뿐만이 아닌 현재 거의 모든 (온라인) 서명운동에서 필요한 부분이다. 막말로 시위를 한다고 쳐 보자. 방송사의 인터뷰는 주동자나 대표자만 인터뷰하지 않는다. 임의의 한 시위자를 잡고 물어보면 그 임의의 사람에서 정확한 답변이 나와야 한다. 지금 서명하는 사람들은 그게 가능할 것인가? …(후략)

 

덧-나는 아직 서명 안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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