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규제 특집(2)]폭력성이 아니라 사행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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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심각한 건 사행성(상업성)이다
올바른 소비생활 배우기
내가 군대 있을 때 한달 선임이 이런 말을 해 준적 있다. 자기 동생이 마비노기를 하는데 펫 몇개 사고 무슨 패키지 지르고 이러니까 한달 이용료가 20~30만원씩 막 나와서 진짜 걱정이라고. 그래서 난 이렇게 말했다. '집에 전화를 해서 말입니다. 인터넷 끓으라고 하십쇼.' 다른 이야기 하나 더. 설날에 메이플스토리 팬사이트를 가면 꼭 보는게 '세뱃돈을 얼마 받았는데 큐브 몇(십)개 질러서 겨우 지작(좋은 능력치의 장비아이템) 하나 뽑아냈다는 글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게임에 돈을 잘 쓰지 않는다. 아니, 원래는 그럭저럭 썼는데 계정 해킹 복구도 안해주는 거지같은 운영서비스를 겪고 난 뒤론 게임에 돈 절대 지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사정일 뿐이다. '부분유료화'게임에선 내가 돈을 얼마를 쓰건 그건 순전히 개인 자유다. 여기까진 부정할 수 없다. 단, 이건 유저가 성인일 경우에만 해당한다. 초등학생이 새뱃돈을 몰빵해서 유료아이템 지르는 것에 쓰는 게 과연 개인의 자유라고 할 범위일까. 중학생이 자기 마음속에 간직한 '아이템에 대한 순수한 욕구'를 믿고 자유롭게 돈을 질렀다가 용돈 범위도 넘겨버리는게 과연 개인의 자유라는 단어로 용납할 수 있을까.
게임의 폭력성도 '내가 사람 머리에 빵꾸내는 게임을 하건 말건 뭔 상관임?'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성인일 때 가능한 이야기다. 요즘 청소년이 많이 숙성(성숙 아님)되어 있기 때문에 알거 다 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게임 등급제가 있는 거고 게임방은 10시 이후 갈 수 없는 것이다. 사행성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지르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겠지만 청소년은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이므로' 어느정도 제한이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게임사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게임회사야 당연히 자기 회사는 청소년의 올바른 인성 발달을 위해 어쩌구저쩌구라고 말하겠지. 근데 내가 보기에는 아니다. 이를 메이플스토리를 예로 들어 알아보자.
'노페 아이템' 제작과정
메이플스토리의 아이템은 '일반능력치'와 '잠재능력치'으로 나뉜다. 일단 일반 능력치부터.
모든 무기나 장비아이템은 주문서를 발라 그 능력치를 올릴 수 있는데 이를 업그레이드라고 한다. 무기의 경우 7번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업그레이드가 성공하면 능력치가 올라가지만 실패할 경우 업그레이드 횟수만 깍이고 능력치의 변화가 없다. 뭐 여기까진 괜찮은데,
친절한 이놈의 회사는 우리가 실패할까봐 '실패했을 때 깍아먹은 업그레이드 횟수 1개를 다시 올려주는' 주문서인 '백의주문서'를 만들었다. 원래 1%인데 최근에는 확률이 10%인 주문서도 존재한다. 단, 이 주문서까지 실패하면 아이템이 사라질 파괴 확률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게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몇몇 주문서는 파괴될 확률이 같이 존재한다. 실패할 경우 ~~% 확률로 아이템이 파괴됩니다 같은.
'혼돈의 주문서'라는 것도 있다. 이건 능력치가 무작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능력치는 적게 올라갈 수도 있고 반대로 원치 않는 능력치가 마음대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래도 여기까진 괜찮다.
프로텍트쉴드 : 주문서 실패시 파괴를 1회 막아줌(5500원)
세이프티쉴드 : 주문서 업그레이드 실패시 업그레이드 횟수 차감을 1회 막아줌.(4900원)
리커버리쉴드 : 주문서 실패시 주문서가 사라지는 것을 1회 막아줌.(3900원)
진정한 지름신은 이때부터 등장한다. 설명이 길게 써져 있지만 그리 중요치 않다. 중요한건, 이 유료아이템을 사용하게 되면 기존 게임이 가지고 있던 확률 관련 규칙을 아예 없었던 걸로 만들어준다. 주문서가 터지는 것도 아니고 장비가 터지지도 않으며 업그레이드 횟수가 깍이지도 않는다. 단, 주문서를 한 번 바를 때마다 5500+4900+3900=14300원씩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지만 개개인의 자유라고 하니 쓸 사람들은 마음껏 쓰시길. 참고로, 이 캐시아이템 같이 쓴다고 해서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기 업글이 7회니까 업그레이드가 전부 성공한다고 해도 17300*7=100100원을 써야 하고 한 번이라도 실패한다면 여기서 가격이 더 올라간다.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의 법칙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아이템 세트.
아, 이걸 빼먹으면 안된다. 원래 메이플 무기의 업그레이드 횟수는 일반적으로 7회인데 이걸 8회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 있다. 이것이 바로 황금망치. 이 아이템 자체는 게임아이템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선 피넛머신, 전자레인지 등 캐시아이템을 써야 한다. 100% 이 아이템을 주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아이템 중에서 어쩌다가 이 아이템이 뜨는 거다.
...여기까지가 업그레이드 과정이고,
※ 일반 강화주문서도 존재함
업그레이드가 끝나면 장비를 강화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무조건 파괴 확률이 붙는다. 이것도 많이 강화할수록 성공확률이 낮아져 11번 이상 성공하려면 원래는 엄청난 행운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캐시아이템인 프로텍트 쉴드가 통한다. 11회 강화가 될 때까지는 터지지 않을 수 있다. 물론 한 개에 5500원이나 하는 아이템을 몇 장이나 바를 건지는 개개인의 자유라고 하니깐...
아, 업그레이드가 완전히 끝났는데 능력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능력치가 무작위로 올라가는 주문서가 능력을 더 많이 올려주는 경우가 있는 반면, 능력치를 덜 올려줄 수도 있기 때문. 이런 사람들을 위해 '퍼펙트 이노센트 스크롤'(9900원)을 판매한다. 이를 쓰면 일반 능력치가 모두 초기화되므로 다시 주문서를 지를 수 있다.
※ 위가 일반능력, 아래쪽이 잠재능력
아직 안 끝났다. '일반능력치'로는 돈이 안 되는지 '잠재능력치'라는 별도의 능력치를 하나 더 만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잠재능력치는 모든 아이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잠재능력치를 만들려면 원래부터 잠재능력이 달린 아이템을 몬스터에게 줍거나, 잠재능력을 부여해주는 주문서를 주워 기존 아이템이 바르는 방법이 있다. 이 역시 파괴확률이 존재하는데 개개인의 자유라는 조건 하에, 프로텍트 쉴드를 써서 파괴를 막을 수 있다.
미라클큐브 : 레어~유니크 아이템의 잠재능력 재설정(1200원)
이 잠재능력은 처음에는 '미확인' 상태인데 이를 '돋보기'라는 게임 아이템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문제는 이 잠재능력이 무작위로 정해진다는 것. 어떤 성격의 능력이 나올지, 그 수치는 얼마가 될 지가 전부 랜덤이다.
그러니까 이 잠재능력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잠재능력 자체를 초기화하고 다시 설정할 수 있는데 이게 '큐브'라고 부르는 유료아이템이다. 또 능력치에도 등급(레어-에픽-유니크-레전드리)이 있어서 이를 올리기 위해서도 큐브를 사용해야 한다.
잠재쪽에도 보너스 아이템이 있다. '각인의 인장'이라는 건데 잠재능력이 2종류만 있는 아이템이 사용하면 한 종류를 더 늘릴 수 있다. 이것도 게임아이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큐브 관련 세트를 사야 보너스로 주는 아이템, 게임 안에서는 실질적으로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니 캐시아이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결과,
그럼 여기까지 정리를 해 보자.
참고 : 잠재능력의 모든 것 / 레전드리 확장팩
먼저 이 말을 하자. 게임의 사행성이라고 할 때 사행성은 '특정 확률에 기대도록 하는 성질'이라고 되어 있다. '큐브'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능력치가 나올 그 몇 안되는 확률에 기대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 그대로의 사행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3종 쉴드세트는 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확률이 있는 것을 100%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쉴드 주문서 또한 게임 내부의 주문서 성공확률과 실패확률, 파괴확률에 기초한 캐시아이템이므로 이 역시 사행성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계속 나오고 있었던 '부화기' '전자레인지' '피넛기계' '천칭' 아이템들은 말만 다를 뿐 '이 아이템을 구매할 경우 여러가지 아이템 중에서 하나가 랜덤으로 등장합니다'라는 알맹이는 동일하다. 주택복권이나 연금복권이나 로또나 전부 복권의 일종인 것처럼.
저런 무한 뺑뻉이의 과정 속에서 이런 아이템이 등장한다. 이 아이템이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이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현금으로' 얼마가 투입되어야 이 정도의 아이템을 만들 수 있을 지 상상이 가는가? 게다가 저 능력치보다 높은 능력치도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가? 잠재능력의 경우, 최고 능력치의 잠재능력을 뽑아내려면 백만원 단위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A군이 게임을 하지 않는 날에는 (부모가 시키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아이템 구입용으로 상납할 것을 요구, 25만여원을 갈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A군이 숨지기 직전 휴일에도 하루종일 '캐쉬(사이버머니) 사라' '매크로(게임능력을 높이기 위한 버그플레이의 일종) 키라'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고, 투신 전날인 19일 오후에는 게임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A군을 무차별 폭행했으며 이날 밤 11시30분 넘어서도 3차례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 "경험치 올리고 아이템 내놔"… 게임, 학교폭력의 온상 되나
A군과 초등학교 동기인 가해 학생 중 1명이 지난 3월부터 온라인게임을 A군의 집에서 하다가 그동안 모아 온 아이템과 점수가 해킹으로 사라지자 엉뚱하게 A군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학생 1명은 9월 초부터 재미 삼아 폭행에 가세했다. 가해 학생들은 A군에게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각목 등으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멍이 남도록 때렸다.
또 가해 학생들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왜 문자에 답을 안 하느냐.', '내일 죽이겠다.' 등의 협박성 글을 3개월에 걸쳐 300여건이나 보냈다. A군에게 값비싼 겨울 점퍼를 사도록 해 이를 빼앗는가 하면 게임캐릭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아이템을 구입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이제 답해보자. 지금 이 기사는 2011년 겨울 일어난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과 관련된 기사다. 지금 이 사건이 폭력성과 관련이 있을까? 메이플스토리가 폭력적인 게임이었나?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가해자들은 왜 피해자에게 게임을 시키고, 아이템을 위한 현금을 뜯어냈던 것인가? 이쯤에서 결론을 내자. 이건 게임의 폭력성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게임의 사행성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메이플스토리의 아이템은 위에서 보았듯이 강화 과정에서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현금이 들어간다. 작년 '노스페이스' 열풍, 예전의 '고급 시계' '황색 겨울코트' '유명 메이커 샌달' 처럼 학생 나이대에는 어떤 것이냐에 차이는 있지만 특정 상품을 가지고 학생간의 계급을 나누려는 시도가 항상 있어왔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 학생 내부 계급화의 기준으로 '게임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앞서 '노페 아이템'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은 이런 의미다. 게임 자체가 학생을 어쩌고 저쩌고 한다는 건 과학적 근거도 없고 말도 안된다. 하지만 거기서 생겨난 아이템, 레벨, 능력치 등은 학교 폭력에 있어서 충분히 동기, 또는 폭력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이 메이플스토리는 '유료아이템'과 '게임머니'의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구매 제한 정책은 별 소용이 없다. 유료 아이템을 사려면 게임을 많이 해 게임머니를 벌면 되고, 반대로 게임머니를 벌고 싶으면 현금을 투자해 유료아이템을 사고 이를 다른 아이템으로 팔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게임 내에 '원하는게 나올때까지 사야 하는 유료아이템'이 있기 때문에 학교 폭력의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하겠다.
요약
ㄱ. 국내 온라인게임의 대부분은 신문에 나온 예시처럼 폭력적이지 않다. 장르에 따라 격투, 총싸움이 들어갈 경우 폭력성을 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건 즐기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고 게임 등급이 이상하게 매겨졌거나 그 등급에 맞춰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
ㄴ. 일부 언론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보여준답시고 나오는 게임(맨헌트2, 데드스페이스, GTA 등)은 아예 우리나라에서 출시하지 않았거나 이미 18금 등급을 먹은 상태다. 그런데도 이 게임을 한다는 건 불법 다운로드를 통한 유통 때문. 정말 이런 게임을 막고 싶다면 게임을 막는게 아니라 불법 다운로드와 관련된 단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ㄷ. 쿨링오프, 강제적·선택적 셧다운제의 경우 '~시간동안은 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시간 외에는 할 수 있다'의 내용이 된다. 폭력성을 담고 있는 게임을 많이 하나 적게 하나 무슨 상관? 결국 위 내용들은 폭력적 게임 차단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ㄹ. 언론 기사만 보면 모든 청소년이 다 밤에 게임하며 노는 것 처럼 보이지만 청소년도 인간이니까 대부분은 밤에 잔다는 것을 기억하라. 실제 셧다운제에 걸리는 청소년은 극소수. 이미 셧다운제는 실효성(실제 효과를 주는가의 여부)이 떨어지며 이정희 의원의 발언처럼 헌법의 위헌 소지도 다분하다.
ㅁ. 폭력성보다 심각한 것은 사행성 문제다. 각종 확률형 '유료'아이템을 통해 청소년을 캐시 셔틀화 시키고 아이템 강화과정에서의 유료 아이템 투입으로 인해 고급 의류보다 더 값나가는 아이템 제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노페(노스페이스) 아이템'은 학교폭력의 직접적 원인은 아닐지언정, 학교폭력 과정에서 폭력의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