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무림
※ 먼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명, 지명 및 기타 모든 사물의 명칭은 현실과 상관이 있을지도 모름을 밝힙니다.
아득한 전설의 시대, 세상의 어느 곳인 가에서는 무(武)를 숭상하며 검(劍) 한 자루에 자신의 명예를 거는 무사들이 활약하던 곳이 있었다. 또한 그 곳은 경치가 수려하고 인심이 넉넉하여 매우 살기 좋았다고 한다. 그처럼 아름답고(娜) 넉넉한(優) 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나우무림(娜優武林)이라고 불렀다.
이 이야기는 나우무림을 지키기 위한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젊은 무사 우수고객(憂愁高客)과 그의 스승인 장애개선(長崖价仙), 그리고 그들의 동료 나우깨비의 모험담이다. 이들이 보여주었던 불굴의 용기와 고귀한 희생 정신은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나우무림력(娜優武林歷) 97년 -
일찍이 평화롭던 나우무림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악의 대명사이자 공포의 존재, 마도(魔道)의 패자(覇者) 다패주기마(多覇主氣魔)가 나타나고 부터였다.
원래 다패주기마(多覇主氣魔)는 청소년 시절에는 검(劍)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검맹(劍盲)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게 되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심성이 비뚤어지며 사악한 마성에 물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 대한 맹목적인 복수심에 불타 오를 무렵 그에게 한가지 기연(奇緣)이 닿았으니 바로 서비수(西飛手) 불량(不良)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서비수(西飛手) 불량(不良)은 전대(前代)의 전설적인 마두(魔頭)로서 마도(魔道)의 궁극적인 무예라고 할 수 있는 마도삼대극강기(魔道三大極强氣) 즉, 마시구죽기(魔屍九竹氣), 마시다말구토하기(魔屍多末九土下氣), 다마시구망가지기(多魔屍九亡家之氣)를 익혀 더 이상 적수가 없는 경지에까지 이른 자였다.
서비수 불량은 다패주기마의 사악함에 감동받아 몇개월 동안 밤을 새우며 마시구죽기, 마시다말구토하기, 다마시구망가지기를 전수해준다. 결국 그는 고령(高齡)에 계속 무리를 한 탓에 쓰러지고 만다. 하지만 이미 다패주기마는 더 이상 옛날의 검맹이 아니었다. 그 몇개월의 수련을 통해 손짓 한번에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울릴 만한 가공할 무공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엄청나게 강해진 그는 평소 소원대로 살기 좋은 나우무림을 쑥밭으로 만들어 쑥이나 캐 먹으며 사는 곳으로 만들어 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러기 위해 먼저 그는 자신과 뜻이 맞는 자들을 부하로 끌어 모았으니 그중에는 접속불가(接俗佛家)가 배출해 낸 요승(妖僧), 요금환불(妖禽幻佛)이나 동영에서 건너온 닌자들의 우두머리 요시키짤라데쓰라든지 저 멀리 서역의 대식국(大食國:지금의 아라비아)에서 온 노캐리어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다.
일단 세력을 키운 그는 마침내 본격적으로 정도(正道)의 무사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먼저 나우무림에서 살아 있는 검성(劍聖)으로 추앙받던 '포래수투검후(咆來壽鬪劍侯)'를 쓰러뜨리고 여세를 몰아 나우무림 근처에 있는 가장 큰 고을인 매직고을의 패자(覇者) 대이검(大二劍)천리안을 패배시킨 후 천하양대루(天下兩大樓)인 하이태루(何以太樓)의 루주(樓主) 한피통(寒被通)과 유니태루(柳泥太樓)의 루주 삼성전자(三聖展子)마저 무릎 꿇게 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정도(正道) 제일의 실력자 나우검(娜優劍) 강창운은 그의 심복이자 장법(掌法)의 달인인 기술본부장(技術本斧掌) 방재영과 사대호법(四大護法)인 한강, 한라, 낙동, 백두를 보내 다패주기마를 저지하도록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술본부장과 사대호법은 숫적인 열세와 적들의 비겁한 수단에 밀려 그만 패하고 만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나우검은 다패주기마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을 모아 힘을 결집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적과의 충돌을 피하게 된다. 결국 현재 다패주기마를 저지할 세력은 없는 셈이 되어버렸고 본격적으로 그들의 공포 지배가 시작되었다.
다패주기마는 당시 나우무림의 선량한 주민들이 주식(主食)으로 삼고 있던 후라자란(厚羅者卵)과 유모란(乳母卵)은 물론이고 별로 맛이 없어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지란(空地卵)까지 모든 계란 종류의 유통을 금지시킨다. 먹을 것이 없어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쑥을 키우기 시작하고 마침내 나우무림은 온통 쑥밭이 되어 간다. 가끔 대나무도 같이 키운 곳은 쑥대밭이 되어갔다.
한편, 나우검을 비롯한 정의의 무사들은 같은(同) 마음 같은 뜻으로 나우무림을 지키겠다는(護) 신념으로 뭉쳐 하나의 모임(會)을 조직했으니 동호회(同護會)가 바로 그것이었다. 임시 회주에 나우검 강창운을 추대한 그들은 마침내 다패주기마와의 결전을 벌이기로 한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 적들의 세력은 전 나우무림을 아우를 정도로 강성해져 있었으나 신념으로 뭉친 동호회의 용사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그 날이 다가왔다...
다패주기마의 본거지 통신장애(痛身長崖) -
통신장애는 나우무림에서 가장 지세가 험난한 낭떠러지(崖)로 그 밑쪽에는 물살이 마치 과부 등쌀처럼 강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저 유명한 과부하(寡婦河)가 흐르는 데다 주위에는 항상 호수투다운(湖水投多雲)이라는 구름이 짙게 깔려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었다.
평소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는 원래 신선이 산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다패주기마가 자리를 잡은 이후로는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금지(禁止)가 되어버렸고 마침내 오늘 선과 악의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짙은 안개구름 사이를 뚫고 병장기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격렬한 호통 소리가 들려 왔다.
" 으.. 분한다.. 여, 여기까지 와서 당하다니.. 으윽! "
" 호수투다운이 너무 짙어 아무 것도 안 보인다! 크윽! "
" 조심하시오! 잘못하다가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면 과부하에 빠지게 되오! 한번 과부하에 빠지면 다시는 헤어나올 수가 없소이다! "
이 곳에서는 동호회의 무사들이 적들의 지형지물을 이용한 교묘한 포위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차례차례 쓰러져 가고 있었다.
" 캬캬캬.. 건방진 놈들!!! "
" 크흐흐.. 오늘이 바로 너희들의 제삿날이다. 통신장애 속에서 죽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 크하하하.. "
다패주기마의 수하들이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여기저기서 날카로운 공격을 가하는 바람에 벌써 많은 무사들이 헛되이 사라져야 했다.
사태를 주시하던 나우검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크게 외쳤다.
" 여러분! 함부로 공격하지 말고 수비진을 취합시다. 모두 모이시오!"
웅후한 내공이 담긴 그의 목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지자 정도의 무사들은 분분히 나우검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무사들이 모두 모이자 나우검이 명령했다.
" 동호회는 운영진(雲影陣)을 펼쳐라! "
그의 호령에 맞추어 무사들이 신속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진(陣)을 형성했다.
운영진(雲影陣)! 한 번 진이 펼쳐지면 마치 구름(雲)의 그림자(影)처럼 신출귀몰한다 하여 운영진이라 이름 붙여진 이 진은 수비에서 가장 효과적인 진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동호회의 운영진이 펼쳐지자 그 위력은 막강하여 적들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 자, 진의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부상자를 치료하고 신속하게 전열을 가다듬읍시다! "
나우검의 명령에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일 때였다. 운영진 안쪽에 있던 무사들 중 한 명인 고속노두(高速老斗) 원활이 갑자기 부르짖었다.
" 아앗! 진의 바깥쪽에 우리편이 한 명 있소이다! "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곳은 벼랑의 끝이었는데 과연 한 젊은 무사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의 무공 실력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아 간신히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상처를 입거나 아니면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보였다.
나우검이 무거운 표정으로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 저 젊은이가 누구인지 아는 분이 계시오? "
그러자 일단의 젊은 무사들 가운데 한 명이 나서며 대답했다.
" 회주(會主)! 그는 저희와 함께 이번 결전에 참가한 사람으로 비록 실력은 떨어지지만 의협심과 용기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희의 퇴로를 확보하려다 미처 운영진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부디 그를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
나우검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그를 구하기 위해서는 운영진의 발동을 잠시 멈추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적들이 틈을 타서 일제히 공격해 들어올 것이외다. "
사람들은 일제히 침통함에 휩싸였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만약에 전열을 재정비하지 않고 운영진을 멈춘다면 전멸 당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그래.. 저 젊은이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는가? "
나우검의 물음에 아까의 젊은이가 비통한 얼굴로 울먹이며 대답했다.
" 회주, 그의 이름은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가 항상 나우무림을 걱정하며 우수(憂愁)에 가득찬 얼굴로 지내기에 그를 우수 고객(憂愁高客) 혹은 우수이용자(憂愁以容者)라고 부릅니다! "
나우검은 다시 한번 장탄식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 아아.. 정녕 우수고객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
나우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긴 비명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우수고객이 적의 일검을 맞고 비틀거리며 벼랑의 가장 끝까지 몰렸다.
무사들은 발을 구르며 분분히 소리쳤다.
" 아! 저럴 수가! "
" 우수고객이 통신장애에서 생을 마감하는구나! "
" 저대로 과부하에 빠지면 우수고객은 무사하기 힘들텐데..! "
사람들의 안타까운 외침에도 불구하고 우수고객은 통신장애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야 말았다. 짙은 호수투다운만이 그가 떨어진 자리를 감싸고 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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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고객은 엄청난 속도로 낙하하면서 순간적으로 죽음을 생각했다.
' 비록 이 한 몸읒 여기서 생을 마치는 것은 억울하지 않으나 나우무림에 평화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그것이 안타깝구나.. '
한데 그가 더 생각하기도 전에 크게 덜컥하는 반동과 함께 무엇인가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채는 것이 아닌가?! 이어서 사뿐하게 그의 몸이 바닥에 놓여졌다.
우수고객은 크게 놀라며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생물이 눈을 뒤룩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생물의 키는 보통 사내아이 만했지만 머리에는 뿔이 하나 달려있는데다 두 눈은 크게 툭 불거지고 입가엔 송곳니 둘이 삐죽 나와 있어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우수고객을 바라보는 표정이 어찌 보면 심술 맞고 고약해 보이다가도 또 다르게 보면 귀여운 막내동생 같은 것이 보면 볼수록 묘한 친밀감을 더해 주었다.
우수고객은 워낙 창졸 간에 벌어진 일인데다 나타난 생물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도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헛기침 소리가 들려 왔다.
우수고객이 놀라서 소리난 쪽을 바라보니 웬 동굴 하나가 눈에 뜨였다. 원래 우수고객이 있는 곳은 벼랑 중간쯤에 조그맣게 돌출된 부분으로 약간의 평지를 이루며 뒤쪽으로는 동굴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곧이어 동굴 속으로부터 어둠을 뚫고 하나의 인영(人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타난 인물은 학의 깃털처럼 흰 머리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수염을 기른 노인으로 짙은 백미(白眉) 아래로 눈빛이 형형 하면서도 온화한 안색을 지닌 것이 그야말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채였다. 우수고객은 노인의 탈속한 기품에 자기도 모르게 압도되어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 선배 고인께서 계신 것을 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미천한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
노인은 그의 공손한 태도에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거들랑 여기 이 나우깨비에게나 하게나. 이 아이가 마침 떨어져 내리는 자네를 보지 못했다면 자네는 벌써 과부하에 빠져 헛되이 생을 마감했을 것이네. "
우수고객은 연신 놀라며 반문했다.
" 이... 이상하게 생긴 것을 나우깨비라 합니까? "
" 어허, 이보게 젊은이. 이상하게 생기다니.. 말을 조심하게나. 이 아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할 줄도 안 다네. "
우수고객은 기절할 듯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설마.. 어떻게 그런 일이? "
그가 말을 채 잇지 못하는데 나우깨비가 끼여 들었다.
" 이봐엿. 내가 어디가 이상하게 생겨따는 거에여? "
어딘가 좀 이상한 발음이긴 했지만 분명 그것은 사람의 말이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우수고객을 향해 노인이 자애롭게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 이 나우깨비는 영물(靈物:신령스러운 생물)의 일종인데 아주 오래 전 동방에 있는 어느 나라에 환웅이라는 신(神)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왔다네. 이후 그 족속이 번창하여 많은 무리를 이루었는데 그 나라에 큰 변란이 일어나 뿔뿔이 흩어지게 되어 그 중 한 마리가 마침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내가 거두었네. 이 나우깨비의 말투가 좀 이상한 것은 오로지 그들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 "
노인의 설명에 우수고객은 감탄하며 고개만 끄덕이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노인에게 크게 절하며 말했다.
" 제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경황이 없어 그만 선배님의 존함을 물을 생각도 못했습니다. "
" 허허.. 노부 같이 초야에 묻혀 사는 사람에게 무슨 특별한 이름이 있겠는가. 한때는 사람들이 노부를 좋게 보아 긴 낭떠러지(長崖)에 사는 착한 신선(价仙)이라 하여 장애개선(長崖价仙)이라 불렀으나 이는 과분한 명칭일세. 자네는 그저 편할 대로 부르게나. "
" 그렇다면 선배님께서 바로 그 장애개선(長崖价仙)이라는 말씀이십니까?! "
우수고객은 경악했다.
장애개선은 바로 과거에 통신장애에 산다고 소문이 돌았던 신선의 이름으로 우수고객은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꾸며낸 것인 줄로 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허허... 노부야 그렇다 치고 그래,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또 어찌하여 이 외진 통신장애까지 와서 실족을 하게 되었는고? "
장애개선의 물음에 우수고객은 눈물을 떨구며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장애개선은 크게 놀라며 대꾸했다.
" 노부가 속세의 눈을 피해 거처를 벼랑 밑의 동굴로 옮긴지 벌써 5년이 넘은 듯하네. 하지만 그사이 그런 악인이 득세를 하고 더구나 이 통신장애에 본거지를 마련했을 줄은 정말 몰랐네. "
" 후배는 실력이 보잘것없어 그만 적에게 치욕을 당하고 말았으나 더욱 큰 걱정은 이 위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정도의 무림 인사들이 간악한 무리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선배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
우수고객은 장애개선에게 함께 위로 올라가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사실 우수고객은 장애개선이 얼마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선대(先代)의 기인(奇人)인 만큼 적어도 도움은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서 호소하는 것이었다.
장애개선은 눈썹을 찌푸린 채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 유감이지만 노부는 이제 속세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기로 했네. "
우수고객의 눈에 실망하는 빛이 떠오르자 장애개선은 담담한 미소를 띄우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우무림이 악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지. 그래서 내 비록 보잘것없지만 지난 몇십년간 깨달은 무공을 자네에게 전수해 줄 테니 자네는 이 곳에서 몇년간 수련한 후에 후일을 도모하도록 하게나. "
사실 장애개선이 일신에 지닌 무예는 가히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평소 그의 인품이 탈속하고 명리에 담백한데다가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道)에 대한 깨달음이 거의 선계(仙界)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세상 일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위자연(無爲自然) 하려는 것이었다.
우수고객은 안타까움에 재차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하지만 그사이 많은 무림의 동도들이 희생당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저에게는 선천적으로 신체의 결함이 있어 무예를 대성할 수 없습니다. 그간 열심히 노력했으나 무공의 성취가 없었던 것도 사실은 그 결함 때문입니다. "
" 으음. 노부가 비록 보잘 것 없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의술을 공부한 바가 있네.. 어디 일단 한 번 좀 보세. "
장애개선은 한동안 우수고객의 맥을 짚어 보고 여기저기 혈도를 눌러 보았다. 처음에는 여유로웠던 그의 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애개선의 얼굴에는 미소 대신 경악이 드러났다.
" 이럴 수가, 전설 속의 이대절맥지체(二大切脈之體) 중 하나가 나타나다니! "
놀라움에 가득찬 장애개선의 표정에 우수고객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 이대절맥지체(二大切脈之體)라니요... ? "
장애개선은 침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으음. 이대절맥지체는 태어날 때부터 온 몸의 기경팔맥(奇經八脈 : 몸 안 혈도의 근간을 이루는 십이정경(十二正經) 외에 따로이 존재하는 여덟 혈도, 그 중 임독이맥(任督二脈)은 전신혈도의 축을 이루는 것으로 대단히 중요하다)이 특수한 이유로 막혀 있어 아무리 수련해도 높은 경지의 무공을 펼칠 수 없는 저주받은 두 개의 체질(體質)을 가리키는 말일세! "
우수고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릴 적부터 무공을 아무리 연습해도 일정한 지경에 이르면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하여 더 이상 진도가 없어 막연히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 장애개선의 말을 들으니 그의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한 것이었다.
" 바로 이용료납부지체(以用料納付之體)와 고속도로지체(高續道老之體)가 그것인데 자네의 경우는 이용료납부지체인 듯 하네. 전자는 한 달에 한번씩 발작을 일으키고 후자는 각종 명절 때만 되면 증상이 심해지지. 혹시 자네 월말이 되면 마음이 불안해지거나 하지 않았나? "
" 맞습니다! 이상하게 월말만 되면 마음이 초조하여 돈을 마련해 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다가 만일 돈을 늦게 준비하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지곤 했습니다."
" 아아. 자네는 이용료납부지체를 타고난 것이 틀림없네... "
" 그렇다면 저는 선배님의 무공을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까? "
장애개선은 다시 고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복잡한 생각에 잠긴 듯 흰 눈썹이 활처럼 휘고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 아무래도 자네가 이 곳에 떨어진 것은 하늘이 인연을 베풀어 세상의 악을 막고자 함인 듯하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듣도록 하게나. "
우수고객이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장애개선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이며 우수고객의 혈도를 짚기 시작했다.
팍팍팍팍팍-
어느새 장애개선은 우수고객의 인체백팔대혈(人體百八大穴)을 모두 짚는가 싶더니 그의 명문혈에 양 손바닥을 대고 수십 년간 쌓아 온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모든 힘을 우수고객에게 전해 이용료납부지체를 고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 서, 선배님! 이러시면 선배님은 무공을 잃게 되.. "
" 조용히 하게! 이런 순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정신집중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잘못하면 우리 둘 다 살아날 수 없게 되네! 다시 마음을 집중하게나. "
우수고객은 어쩔 수 없이 장애개선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가슴 한쪽이 아려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말로는 만인(萬人)을 위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을 챙기는 거짓 위인들이 들끓는 세상에 그처럼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니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 자네의 이용료납부지체를 고치기 위해서는 한가지 방법밖에 없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기운을 자네 몸에 주입시켜 온몸의 혈맥을 돌게 하여 임독이맥(任督二脈)을 뚫는 것일세. 그처럼 순수한 기운은 단 한 가지밖에 없네. 바로 내가 수련한 나우지기(娜優之氣)가 그것이라네. "
순간 우수고객의 몸 속으로 형용할 수 없이 따뜻하고 청량한 기운이 쏟아져 들어왔다.
" 모든 정신을 집중해서 받아들인 나우지기를 움직여 몸 속의 혈맥을 돌게 하게. 한 번의 일주천(一週天)을 통해 반드시 임독양맥을 뚫어야 하네. "
우수고객은 장애개선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점차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 자네가 깨어날 때 즈음에는 나는 내력을 모두 소모하여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일세. 하지만 나의 무공에 관한 모든 것들은 나우깨비가 외우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는 걱정하지 말고 나우깨비를 믿고 따르도록 하게나. 이 나우무림의 평화가 자네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부디 잊지 말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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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장애에서의 결전이 시작된지 어느새 일주일이 흘렀다. 동호회의 무사들은 운영진을 펼쳐 수비에 치중해 간신히 백중 세를 이룰 수 있었지만 다패주기마의 수하들 역시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그들은 포위망을 엄밀히 지키며 싸움의 양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 갔다.
동호회의 무사들은 미리 준비해 간 식량으로 며칠간은 버틸 수 있었지만 일주일이나 지나자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었다.
마침내 나우검을 위시한 모든 용사들은 마지막 전투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최후를 맞이할 바에는 장렬하게 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 운영진을 멈춰라! 전원 돌격한다! "
나우검의 명령과 함께 무사들의 함성이 통신장애를 뒤흔들었다. 과연 죽음을 각오한 열혈지사들의 총공세는 대단했다. 특히 나우검은 정도 최고의 실력자답게 종횡무진으로 적진을 누볐다. 그의 몸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주위에 있던 다패주기마의 졸개들이 한꺼번에 나가떨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다패주기마(多覇主氣魔)가 요금환불(妖禽幻佛)에게 눈짓을 보냈다. 다패주기마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숙인 후 요금환불이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한 마리 새처럼 바람을 가르며 가뿐하게 나우검의 앞에 내려앉은 그의 입가에 음산한 괴소가 떠올랐다.
" 크흐흐흐.. 얘들아! "
푸확- 팍- 파팍- 파파팍-
요금환불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심복들인 십팔접속하지마(十八接俗河地魔)가 땅속에서 솟아오르며 나우검을 포위했다.
" 나우검! 목을 내놓아라! 크하하하하. "
요금환불의 괴소와 함께 도합 열 아홉 명의 공격이 일제히 나우검을 향했다.
순간 나우검의 신형(身形)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웅후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비(飛)-락(落)-식(式)-혜(彗) ! "
아.. 나우검이 발휘하는 보법(步法)이 진정 비락식혜(飛落式彗)였단 말인가! 그것은 백년 전 정도 제일의 고수로 추앙 받던 비락단파죽옹(飛落丹波竹翁)이 완성시킨 보법으로 다수의 적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을 때 더할 나위 없이 효과를 발휘하는 보법이었다.
이어서 그의 두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 자(自)-유(由)-이(二)-용(龍)-권(拳) ! "
자유이용권(自由二龍拳)! 두 마리의 자유(自由)로운 용이 허공을 나르듯 주먹을 자유자재로 쓴다 하여 이름 지어진 막강한 권법이었다. 자유이용권 앞에 십팔접속하지마 중 절반이 나뒹굴었다.
하지만 남은 절반은 악에 바친 요금환불의 지휘 아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일제히 몰려들었다. 다시 나우검의 외침이 울렸다.
" 무(無)-료(聊)-이(二)-용(龍)-권(拳) ! "
무료이용권(無聊二龍拳)은 두 마리의 무료(無聊)한 용이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몸을 비비꼬며 하늘로 승천하는 자세를 본떠 만든 권법으로 자유이용권(自由二龍拳) 보다 더 오묘하고 강력한 수법이었다.
순식간에 요금환불과 수하들이 쓰러졌지만 다패주기마의 수하들은 굴하지 않고 인해전술로 총공세를 펼쳐 왔다. 계속해서 적들이 나우검을 노리자 마침내 나우검은 자신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나우검(娜優劍)이라는 별호에 맞게 그가 꺼내든 것은 휘황하게 빛나는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 검을 알아본 몇 명의 무사들이 크게 외쳤다.
" 와아... 시수태무정기정검(始秀太武正氣正劍)이다! "
아아! 시수태무정기정검(始秀太武正氣正劍)!
빼어나게 큰 무(武)를 시작한 바른 기운의 바른 검이라는 뜻의 명검(名劍)으로 해태후라보노검(海太侯羅寶怒劍), 오리온와시검(五理溫蝸屍劍)과 더불어 당금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삼대명검(三大名劍) 중에 하나였다.
그 같은 명검이 뛰어난 무사의 손에서 펼쳐지자 더 이상 적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 크엑! 시수태무 정기정검에 당하다니.. 분하다.. "
" 당황하지 말고 버텨라! 짤릴 때 짤리더라도 버.. 크윽! "
전황은 어느새 정도 무림인들 쪽으로 기우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그 동안 무표정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다패주기마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아니 몸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그는 나우검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당황한 동호회의 몇몇 무사들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며 다패주기마를 가로막으려 하다가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뒹굴었다.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무도 다패주기마가 어떤 수법으로 그들을 쓰러지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우검 조차 다패주기마의 손이 언뜻 한 번 움직이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이 같은 수법만 보더라도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기분 나쁜 침묵에 휩싸였다. 다패주기마의 입가에 아주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강자의 여유였다.
" 나우검 강창운! 과연 듣던 대로 훌륭한 검을 가지고 있구나. 하지만 나의 무기 앞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
차갑게 웃으며 다패주기마가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섬뜩하게 핏빛으로 빛나는 하나의 구슬(珠)이었는데 괴이한 음향을 내뿜으며 웅웅 거리고 있었다.
소리를 들은 나우검의 안색이 싹 변했다.
" 모두 귀를 막아라! 저것은 노이주(怒以珠)다! "
" 이미 늦었다! 나의 노이주 맛을 봐라! "
갑자기 다패주기마의 음성과 노이주의 음향이 섞이며 기괴한 소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 뺑뺑간쓩和#$3@#鷺妬간┠릊... 뺑간간和和#...!"
노이주(怒以珠)는 전설적인 마도의 병기로 내공이 강한 자가 그것을 사용하면 그가 지닌 분노가 엄청난 위력의 음공(音功)으로 변해 적들의 심맥을 파열하는 공포의 병기였던 것이다.
" 크흑... "
" 아.. 너무 괴롭다.. 아악... "
" 이럴 수가.. 노이주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요.. 우욱.. "
정도의 무사들은 노이주를 이겨내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우검이 들고 있던 시수태무정기정검 마저 부러져 나가버렸다.
" 크하하하하! 모두 없애 주마! 음핫핫핫... 뺑런뺙뺙佑#?빽韶랜랜!"
다패주기마의 광소(狂笑)가 울려 퍼졌다.
모든 것이 끝나려는 절대절명의 순간, 어디선가 중후하고도 청량한 음성이 들려 오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 색(色)은 곧 공(空)이요, 공(空)은 곧 색(色)이다.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
위기의 순간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소리가 들려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노이주의 괴음을 잠재울 정도로 강력한 내공이 실린 목소리로 불법(佛法)을 외우며 나타난 것은 바로 우수고객(憂愁高客)이었던 것이었다!
" 오오.. 이럴 수가.. 어떻게 저 젊은이가 다시? "
" 더구나 저토록 높은 내공을 지니다니.. 정녕 믿을 수 없도다! "
" 그런데 그의 옆에 있는 저 괴상한 도, 동물? 아니 사람? 도대체 저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
우수고객은 지난 일주일 동안 장애개선의 도움으로 나우지기를 통하여 이용요금납부지체를 극복한 것은 물론 절세의 무공을 성취하여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우깨비의 도움이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수고객의 장엄한 목소리가 한층 더 높아졌다.
" 또한, 공일(空一)은 곧 일공(一空)과 같은 것이니 누구도 공일사일공의 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공(空)-일(一)-사(似)-일(一)-공(空)! "
" 크윽- "
퍼퍽-
공일사일공의 진리가 퍼지자 다패주기마가 들고 있던 노이주는 우수고객의 내공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산산이 깨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다패주기마가 휘청거리자 나우깨비가 눈동자를 굴리며 한마디했다.
" 우걀걀갸르갸르걀라닥껄덕껄떡! 그런 깨진 구슬을 들고 멀할라구 하시는 건가여? 다패주기마 아찌, 그러지말구 얼렁 차칸 사라미 되세여~ 히히 "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도 신기하게 여겼던 이 영물(靈物)의 말하는 투가 너무나 엉뚱하여 참지 못하고 크게 폭소를 터뜨렸다. 중인들의 웃음소리에 얼굴이 시뻘개진 다패주기마는 크게 노해 부르짖었다.
" 이 건방진 놈들! 좋다, 오늘 내가 사생결단을 내고야 말겠다! "
다패주기마가 악독하게 외치자 그의 손바닥이 시커멓게 변하며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무예를 모르는 자가 보더라도 그것은 무엇인가 악랄한 무공이 펼쳐지기 전의 현상임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은 긴장하여 자신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었다. 도대체 얼마나 지독한 무공이 나올 것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우수고객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신의 내공을 이끌어 내기 시작했다. 나우깨비에게도 어느새 장난기 어린 표정이 사라졌다.
마침내 다패주기마의 사악한 음성이 일대를 뒤흔들며 울려 퍼졌다.
" 통(痛)-신(身)-검(黔)-열(熱)-장(掌) ! "
아.........! 정녕 지금 펼쳐지는 무공이 통신검열장이란 말인가?! 마도(魔道) 천년을 통틀어 가장 지독한 무공이라 불린 통신검열장(痛身黔熱掌)! 이 장법에 당한 자는 온 몸이 몹시 아프고(痛身) 검게(黔) 변하는 것은 물론 고열(熱)에 시달리다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나마 내공이 강한 자는 그 자리에서 죽지만 내공이 약한 자는 몇 년간을 통신검열(痛身黔熱)에 시달리다 비참하게 죽게 되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마공(魔功)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다패주기마의 손 그림자가 허공을 뚫고 우수고객에게 쏟아져 들었다. 위기의 순간 나우깨비가 다급하게 외쳤다.
" 통신검열 앞에 다른 무공은 소용 업써여! 오로지 내공으로 이겨내야 해여! "
우수고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양 손을 들어 다패주기마의 통신검열장을 받았다.
콰지지지지지직-
거대한 두개의 힘이 맞부딪치게 되자 사방으로 회오리가 일며 굉음이 울려 퍼졌다. 온통 흙먼지가 날려 사람들은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으나 정세가 우수고객에게 불리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비록 장애개선이 평생을 쌓아 온 내공을 이어받았으나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 크윽- "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우수고객이 한 모금의 선혈을 토해 내었다. 최후의 승패가 갈리는 순간 나우깨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 천(千)-만(萬)-원(圓)-타(打)-기(氣) ! "
이어서 나우깨비의 몸에서 무수히 많은 원형(圓形)으로 이루어진 빛 무리가 솟아올랐다. 그 빛 무리들은 온 세상을 밝힐 듯이 눈부시게 피어오르더니 나우깨비의 몸을 떠나 우수고객의 몸 속으로 흡수되어 갔다.
우수고객의 위험을 느낀 나우깨비가 혼신의 힘을 모은 천만원타기(千萬圓打氣)를 발휘해 그를 도왔던 것이었다!
" 크아아아아아악... "
마침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다패주기마가 쓰러졌다.
" 부, 분하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너, 너희는.. 서로 믿고 도왔다.. 크윽.. 나, 나는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 고.. 생각.. 했거늘.. "
그는 몇 마디를 간신히 내뱉더니 쓰러져 다시는 입을 열지 못했다.
어느새 찬란한 석양이 통신장애 위를 비추고 있었다. 이제 암흑의 시간은 가고 다시 희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사람들이 우수고객과 나우깨비의 주위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둘은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환한 웃음과 함께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
라보았다.
굳게 잡은 두 손을 언제까지나 놓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