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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16 수정 : 글을 쓸 당시에는 제가 잘 몰라서 '천황'이라고 썼는데 이걸 '일왕'으로 수정합니다. 알려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1. 일본의 입헌군주국 전환 배경

(1) 종전과 항복

일본에 있어서 일왕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이 중에서 일본이 현재 입헌군주국이 된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해방 전후의 사정을 알아보아야 하고 여기서 좀 더 진행하자면 2차 대전 이전, 왕정복고를 실시하고 전체주의 체제의 시작점이 된 메이지유신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좀더 정확한 요점 파악을 위해 일왕의 권한이 박탈되는 시기인 2차대전 직후 상황만을 보도록 하자.

사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형 전쟁에 참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당시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기반이 되었었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 중심에는 일왕의 강력한 권한이 있었다. 그리고 그 권력이 시작된 것은 1868년 메이지유신이었다(내각제 등 제도적인 근대화가 벌어지는 것은 1920년대이다).

하지만 참전을 한다고 전부 이긴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본은 점점 패전이 확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연합국은 일본에 한복 권고와 전후의 대일 처리에 대한 방치를 적은 ‘포츠담선언’을 발표했다.

포츠담선언은 1945년 7월 미․영․중 3국 대표가 포츠담에 모여 발표한 것으로써 1~5항에서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 이 선언을 수락할 것을 요구하는 전문이다. 6항은 군국주의의 배제, 7항은 일본 영토의 보장점령 8항은 카이로선언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9항은 일본 군대의 무장해제, 10항은 전쟁범죄자의 처벌, 민주주의의 강화, 12항은 민주주의 정부수립 13항은 일본군의 무조건적 항복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일본 내각은 포츠담선언을 수용하지 않았다(7월 24일). 일본은 회신을 통해 ‘묵살한다는’는 응답을 한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일왕’ 때문이었다. 당시 스즈키 간타로 내각은 일왕제의 존속, 즉 ‘국체호지’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었는데 포츠담선언에서는 이와 같은 내용이 없었다.

하지만 상황은 더욱 긴박하게 돌아갔다. 8월 6일과 9일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막심한 피해를 입게 되었고 8월 8일에는 일본이 중재자로 나서주길 바랬던 소련이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면서 그 계획도 무산되었다. 일본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8월 10일 새벽, 어전회의에서는 ‘일왕의 성스러운 결단(성단)’에 따라 항복을 결정했다. 이어서 14일에 이 항복은 최종적으로 결정되었고 15일 정오에는 일왕이 직접 ‘종전 조칙’을 발표해 무조건적인 항복을 결정했다. 16일에는 전 육․해군 전군에게 전투 정지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종전 조칙의 항복은 사실은 무조건적인 항복이라고 하긴 힘들다. 여기에 관한 근거는 항복 결정 이후 미․일간 교신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10일 어전회의 이후 일본이 미국이 보낸 교신 내용에는 ‘일왕 통치의 대권을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수락’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기에 대한 미국(연합국)의 회답은 ‘일왕 및 일본정부’의 국가 통치권한은 연합국 총사령관의 예하에 둔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일왕과 일본정부라는 지위 자체는 유지할 수 있다는 암묵적 승인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결국, 일본의 종전 선언은 국체호지를 조건으로 한 전쟁 종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15일 종전 조칙이 발표되고 30일에는 맥아더 연합국 총사령관이 일본에 도착함으로써 연합군의 대일 점령이 개시되었다.

(2) 연합군 점령 이후의 개혁방향

연합국(실제로는 미국)에 의한 일본 점령은 단순한 군사적 점령이 아니었다. 앞서 포츠담 선언에서도 10항에서는 일본 내 언론, 종교, 사상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의 존중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12항에서는 일본내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될 때 철수한다고 하였다. 이는 군사적 점령만으로는 하기가 힘든 사항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일 점령정책은 종합적인 통치-관리정책이었다.

이를 압축하여 ‘2D 정책’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일본의 비군사화(Demilitari- zation)와 민주화(Democratization)라는 2대 정책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시행된 것은 비군사화 정책이었다. 1945년 9월 2일에는 일본의 전군 무장해제와 군사기관, 전시행정기구, 군사단체를 폐지하고 일본군법 및 군사법령을 폐지하였다. 또한 군인을 공직에서 추방하였으며 전범 용의자의 재판과 처벌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비군사화 조치는 일본의 민주화를 위한 선행 조치로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순서상으로 보아도 비군사화 이후 민주화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그 순서를 통해서도 알수 있는 사항이다.

다음으로 시행된 민주화 조치는 1945년 9월 말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행해졌으며 주로 각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1) 신문통제 철폐에 관한 각서(9월 24일)

2) 신문통신 자유에 관한 각서(9월 29일)

3) 정치, 민권, 신교의 자유에 관한 각서(10월 4일)

4) 민주화를 위한 5대 각서(10월 11일)

5) 군국주의 또는 초국가주의 교원의 추방에 관한 각서(10월 31일)

6) 재벌자산 동결, 재벌해제에 관한 각서(11월 2일)

7) 황실재산 동결에 관한 각서(11월 20일)

8) 군인은금의 정지 등에 관한 각서(11월 25일)

9) 농민해방에 관한 각서(12월 9일)

10) 재벌의 자산과 활동제한에 관한 각서(12월 11일)

11) 국가의 신도의 분리에 관한 각서(12월 15일)

12) 정치범의 공민권 부활에 관한 각서(12월 15일)

이 중에서 통치체계와 관련해서 꼽을 수 있는 사례를 골라낸다면 3), 4), 7)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각서들의 공통점은 일왕의 신격화, 권력강화와 관련된 것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3) ‘정치, 민권, 신교의 자유에 관한 각서’를 통해서는 일왕 비판에 관한 자유가 주어졌으며 치안유지법 등의 탄압 법령또한 철폐되었다. 4) ‘민주화를 위한 5대 개혁에 관한 각서’는 구체적으로 여성해방, 노동단결권보장, 교육민주화, 전제정치로부터의 해방, 경제의 민주화를 담고 있는데 이 중에서 전제정치를 없에겠단 부분은 이전 일왕의 전제주의적 권한을 지우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었다. 일왕의 재산과 관련해선 7) ‘황실재산 동결에 관한 각서’를 통해 그 재산을 동결시켰다.

결정적으로, 총사령부는 12월 28일 일왕제 지배의 기초는 상실되었다고 선언했으며, 124대 일왕인 히로히토는 1946년 신년사인 ‘인간선언’을 통해 일왕 봉인이 일왕의 신격화를 부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 점령 이후 일왕의 인간선언까지의 개혁조치는 일왕은 유지하되 일왕이 가진 권력은 빼앗는 입헌군주제로 가기 위한 기반을 다져주었다.

(3) 일본국 헌법의 제정

2D정책이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위한 기초공사 차원이라면 새로운 헌법, 일본국 헌법의 제정은 그 다져진 기초 위에 건물을 세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현재의 일본국 헌법은 47년 시행 이후 여러 차례 개정 논의에도 불구하고 개헌된 적이 없으며 아직도 일본 체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고 있다.

헌법 개정에 관한 논의는 연합국 총사령관인 맥아더로부터 시작된다. 10월 4일 고노에 국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맥아더는 자유주의적 신헌법으로의 개정 필요성을 언급했고 10월 11일에는 시데하라 수상을 만난 자리에서도 헌법의 자유주의적 개정을 요구한다. 사실상의 헌법 개정 요구였다.

이에 고노에 국무상과 시데하라 수상(헌법 개정 주임은 마스모토 조지)은 맥아더의 요구로 인해 연구한 개정안을 제출했다(고노에안, 마쓰모토안) 하지만 그 개정요강은 기존의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맥아더는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자체적인 헌법 개정 작업에 들어간다. 이때 추진한 것이 ‘총사령부안’인데 이를 만들기 위해 맥아더는 민정국에 헌법 개정에 관한 3개 지침을 제시한다. 그 세 가지 지침은 1) 일왕은 국가원수의 지위에 있다 2) 전쟁을 포기한다 3) 귀족제 등 봉건적 제도를 폐기한다 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내용은 일본국 헌법에 반영되어 있다.

맥아더의 지침을 받아 완성된 총사령부안은 46년 2월 13일 일본정부에 전달되었고 3월 2일 일본 정부안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이 안은 총사령부안과 비교하여 주권재민의 원칙과 집회결사의 자유가 총사령부안보다 후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총사령부와 일본 정부는 재교섭을 통해 현행 헌법의 초안을 마련해 47년 5월 3일부터 시행되었다.

2. 일왕과 총리대신(수상)

현행 일본국 헌법에 따라 일본의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적 통치구조를 따르고 있다. 입헌군주국에서의 왕은 상징적인 존재로 남게 되며 실질적인 권한은 전부 수상(총리대신)이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항은 헌법 1조에 밝혀져 있다. 보통의 국가에서 1조에는 국가의 정체성을 알려줄 만한 핵심적인 조항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본의 경우는 이 헌법 1조에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한다. 즉, 일본을 상징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 지위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에선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고 적혀 있다. 이 조항만을 보더라도 일본의 통치구조가 정반대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4조에서는 헌법이 정한 국사(국가업무)에 관한 행위만을 행하며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가질수 없다고 되어 있다. 이 국사의 범위에 관해서는 7조에서 정해져 있으으며 주로 입법부의 일정과 관련된 것과 외교적인 분야에 관한 것이 주를 이룬다. 이 국사조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황의 국사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이 필요하며, 천황의 국사행위에 대한 책임을 대신이 지기 때문(헌법 제3조)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수상인 총리대신은 실질적인 권력을 전부 가지고 있다. 총리대신은 행장부와 내각의 수장이며 내각의 사무 통괄, 자위대의 최고 지휘감독권, 의안 제출과 안건 보고, 중의원 해산 등 다양한 영역의 사무를 수행한다. 천황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총리대신이 지는 것을 보아도 천황의 권한이 총리대신에게 넘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마치며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 천황 중심의 군주적 통치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패전 이후 미 점령기 시기를 거치며 2D정책이라 부르는 종합적인 개혁을 치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천황은 그간 가지고 있었던 신성성, 권한이 대부분 사라졌으며 천황의 지위조차 국민의 민의에 기초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를 반영하는 것이 일본국 헌법이다.

현재의 일본 헌법상 천황은 국가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나 실질적인 권력은 없으며 통상적으로 행하는 업무도 전부 내각에 종속된 상태이다. 반대로 총리대신의 경우 실질적인 권한을 전부 가지고 있다.

 

*** 카이로선언 :

1943년에 카이로에서 미국, 영국, 중국이 발표한 공동 선언. 일본의 무조건적 항복과 전쟁 뒤의 일본 점령지의 반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일본국 헌법 :

정식명칭은 ‘일본국 헌법’이다. 메이지유신 당시 만들어진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 구헌법)과 대비시키는 차원에서 ‘신헌법’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당시 천황인 쇼와 천황(히로히토)를 따서 ‘쇼와 헌법’이라고 부르며 헌법 9조라는 평화주의적 조항 때문에 ‘평화헌법’으로도 부르고 있다. 이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전부 동일하다. 여기에서는 공식명칭을 사용한다.

***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 :

본문에 나온 조항은 제1조이며 천황의 통치를 뒷받침했던 조항은 대일본제국 헌법 곳곳에 남아있다. 3조에서는 ‘천황은 신성하여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하고 있으며 4조에선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이 헌법의 조항에 따라 이를 행한다’라고 적혀 있다.

*** 천황의 국사 범위 :

헌법개정, 법률, 정령 및 조약을 공포하는 것, 국회를 소집하는 것, 중의원을 해산하는 것, 국회의원의 총선거의 시행을 공시하는 것, 국무대신과 법률이 정하는 기타 관리의 임면 및 전권위임장 및 대사와 공사의 신임장을 인증하는 것, 대사, 특사, 함형, 형의 집행의 면제 및 복권을 인증하는 것, 영전을 수여하는 것, 비준서 및 법률이 정하는 기타의 외교 문서를 인증하는 것, 외국의 대사 및 공사를 접수하는 것, 의식을 행하는 것.


 

 

주석 번호는 따로 달려있지 않음.

참고문헌

현대일본학회, 2007, 『일본정치론』, 논형

Wikisource - 일본국 헌법(http://ko.wikisource.org/wiki/일본국_헌법)

위키백과 - 대일본제국 헌법(http://ko.wikipedia.org/wiki/대일본제국헌법)

위키백과 - 일본국 헌법(http://ko.wikipedia.org/wiki/일본국헌법)

위키백과 - 쇼와 천황(http://ko.wikipedia.org/wiki/쇼와_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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